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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Ⅱ

[토니로키] 신




 


To. 덕삼nim, 종비nim

Idea came from 덕삼nim

Written by 파란괴물

(sound on plz, 3 songs here)





01


사람들은 그가 신이라 했다. 그 신은 마음대로 모습을 바꿀 수 있었고 헐크의 공격에도 온 몸이 산산조각 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그가 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꿀 수 있을 뿐으로. 그저 헐크에게 끄떡없는 강인한 육체를 지녔을 뿐으로, 토니에게 ‘신’이라는 깊은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다. 그것은 로키가 신으로서의 권능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토니라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신이라는 존재를 믿지 않게 ‘신’에 의해 설계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간에서 말하길 신은 전지전능 지선하다 하였다. 토니가 신을 믿지 못하는 건 그가 원체 그 어떤 것도 믿지 않는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그렇기도 했지만 세상이 자신과 같은 영웅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또한 세상이 무기를 원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세상의 악과 더불어 자신에게 내재된 욕망은 너무나 손쉽게 신이라는 이상을 무너뜨렸다. 나아가 그에겐 그 누가 감히 신이 전지전능하며 지선하다고 하였는지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토니에게 신은 존재하지 않는, 존재하여도 존재하지 않아도 전혀 상관없는 ‘어떠한 것’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가 세상 앞에서 한없이 당당하고 오만할 수 있었던 불가지론자로서의 입장은 그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지속되진 못하였다. 아름답게 말해서 그것은 불가지론자에게 신이 내리는 벌이었다. 잔인하게 말해서 그것은 불가지론자인 토니에게 로키라는 신이 내리는 사랑이었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원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사건의 반증이 사랑이고 또한 그 자체로서가 사랑이 되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하지만 사랑? 사랑이라니! 토니는 속으로 스스로의 생각을 비웃었다. 차라리 이 모든 것들이 단지 자신이 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기에 받게 되는 벌이기를 바랐다. 그래, 차라리 그것이 죄가 되고 그 죄를 벌할 수 있는 존재가 있어 그가 나를 벌하는 것이라면 얼마든지 달게 받을 텐데. 당장 가슴에 박힌 이 얕은 속임수도 떼어버리고 벌을 받을 텐데! 그러나 아름다운 이야기엔 그럴듯한 묘사만이 있을 뿐이다. 토니는 늘 현명했다. 그렇기에 그의 현명함은 이것이 단지 L이 T를 사랑했기 때문에, T가 L을 사랑했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애초에 사건은 없었다. 행위를 결과로 만들 원인도 있었던 적이 없다. 토니의 절망과 로키의 안식 그 모든 것은 그저 그 자체로서 완성되는 하나의 의식일 뿐이었다. 푸른 생명을 들이킨 행위가 곧 신성하고 시리도록 순수한 그의 사랑인 것이다. 토니는 무의식중으로 계속 신을 되뇐다.
토니의 가슴은 좁고 좁아 로키의 사랑을 온전히 담아 낼 수가 없다. 사랑과 동시에 느껴지는 절망이 그의 좁은 가슴을 한없이 양극으로 늘였다. 괴롭다. 토니는 괴롭다. 토니는 신이여 신이여 신이시여 되뇌다 이윽고 이렇게 외친다. 오 신이여, 차라리 벌을 내려주소서!




02


로키는 창백한 얼굴로 그를 돌아다 봤다. 그는 당장에라도 질식할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몇 번째야? 토니는 미간을 좁힌다. 짧게 속눈썹을 파르르 떨며 눈을 내리까는 로키는 도시의 야경이 선사하는 빛으로 인해 음영진 조각상 같다. 토니는 그 짧은 순간 부질없게도 그리스 로마신화의 플라시보를 떠올린다. 물론 토니는 그런 자신을 비웃었다. 그는 스스로의 기가 막힌 소망에 질려 로키에게 화를 내는 대신 조용히 그의 모습을 살핀다. 우아한 검은 머리칼은 로키의 '정신 사나운' 행동으로 인해 헝클어져 자칫 지저분해 보일 수 있었으나 그 특유의 꼿꼿이 편 허리와 움츠렸으나 그 때문에 더욱 도드라진 쇄골, 또 어깨에서 시작하여 팔로 이어져 내려오는 정지된 선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묘한 단정함을 느끼게 했다. 토니는 기이한 조화에 잠이 달아남을 느낀다. 게다가 빛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로키의 피부는 너무나 차갑고 이 세상의 것 같지 않아 토니의 정신을 더욱 바짝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가 내 앞에 있는 것이 진실인가? 내가 그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미쳐버린게 아닐까.
그리고서 토니는 손을 뻗어 눈을 감고 있는 로키의 볼을 엄지로 조심히 쓰다듬는다. 로키는 미동이 없다. 토니의 오른 엄지가 다시 한 번 더 로키의 고운 결을 따라 움직였다. 얕게 그의 손등 위로 숨결이 스쳐지나갔다. 간지러워. 토니는 자신의 앞에 자리한 황홀한 로키를 본다. 천천히 검지를 그의 볼 위로 올리고 다음으로 중지를 그 다음으론 약지를... 잔뜩 날을 세우듯 긴장한 감각들로 인해 토니는 로키의 솜털까지 느낄 수 있었다. 이 야릇한 순간에 그는 요 근래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던 로키에게 달콤한 잠을 선사해주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는 생각이 들자 기쁜 마음으로 신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비집어 열었다. 하지만 키스까지는 흔쾌히 따라오곤 하던 로키가 토니의 손을 낚아채며 눈을 떴다. 토니는 내심 화가 나 날을 세우고 있을 로키의 눈동자를 기대했다. 빛나는 로키의 눈동자만큼이나 그를 설레게 하는 것은 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로키는 곧바로 토니에게 시선을 주지 않는다. 평소의 토니였다면 로키의 얼굴을 돌려 자신을 보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엔 토니마저도 로키의 눈동자를 바라보기가 겁이 났다. 마치 그 안에 다른 누군가가 자리하고 있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천하의 아이언맨인 토니 스타크를 엄습했기 때문이다.




03


이윽고 로키가 토니를 바라봤다. 로키는 깊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가끔은 바다를 볼 때 느끼는 막연한 공포감이 밀려오기도 하였으나 이번의 공포는 달랐다. 경이감이 주는 무게와 달리 로키의 눈동자는 그저 끝없는 암흑으로 덮여 모든 영광들을 잃은 것 같았다. 암흑은 소설의 묘사들처럼 그의 눈빛을 탁하게 만들었다거나 눈동자의 색을 변색시킨 것이 아니었다. 실로 아무런 변화도 없이 위험하게 반짝이는 눈동자일 뿐인데 토니는 그곳에 암흑이 자리하고 있다고 느낀 것이다. 로키는 한 없이 그를 응시한다. 쳐낸 토니의 손을 땀이 배어나올 정도로 꽉 쥐며 말이다. 그제야 토니는 무언가가 로키를 겁먹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제기랄! 토니는 장작처럼 굳어있는 로키에게 감히 이유를 물을 수가 없어 침묵한다. 무엇인지 모를 깊은 바다 같은 암흑 속에서 수면으로 떠오르기를 바라며 로키의 시선을 피하지 않는다. 로키의 초점은 분명하고 또렷하게 토니의 눈을 마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없다. 그 푸르른 숲 안엔 자신이 알던 로키가 없었다.




03.5


토니 스타크는 숨이 턱하고 막혀 들어왔다. 로키는 대개 차가워 보이는 남자로 쉽게 감정에 흔들리는 일이 없었다. 로키는 장신 때문에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일이 잦았는데 그때의 눈매와 분위기가 다른 사람들과 한 없이 먼 느낌이라 토니는 그 벽을 허물어 버리고 싶어, 그의 얼굴을 엉망으로 만들고 싶어 했었다. 토니가 원하던 방법은 아니었지만 지금 로키는 엉망진창이었다. 돌조각처럼 절제되어 있어도 로키는 그 속에 타오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도도하게 사람들을 관찰하는 척하여도 그 속에서는 강렬함을 갈구하는 로키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는 모든 불길이 사그라진 듯 차분히 텅 빈 로키가 있을 뿐이다. 토니가 눈치 채지 못한 방법으로 로키는 빠르게 무너져 내렸다. 로키는 여전히 표정이 없다. 그러나 엉망이다. 그래서 토니는 숨이 막혀 온다. 자신의 부주의가 자신의 사랑을 잃게 만들었다는 자책감이 굵은 통나무가 되어 그의 가슴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깊이 생각해 볼 것도 없이 떠오르는 것은 로키가 근 한 달간 새벽 2시를 넘기지 못하고 잠에서 깨어났다는 것이다. 토니는 그에게 한정하여 민감한 사람이었기에 로키가 자다 깰 때마다 항상 같이 깨어났다. ‘악몽이라도 꿨어?’ 그러나 로키는 그저 기분 나쁜 꿈일 뿐이라고 말했다. 다음 날 로키는 다시 깨어났고 토니도 뒤따라 일어났지만 토니의 물음에 그는 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토니도 그 이후로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다만 로키가 자신이라는 둥지에 질려 떠날 채비를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토니는 놀라운 유머감각을 지닌 남자였다. 시작은 뚜렷하지 않지만 언제부터인가 토니가 세상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사용하던 재치와 유머가 세상 자체가 되어버렸다. 그러자 세상의 모든 어둠은 그에게서 달아났고 악몽 같은 것엔 시달리지 않는 사람이 된다. 그러한 연유로 토니는 그 악몽이라는 것이, 정신적인 압박이 사람을 얼마나 미치게 만드는지에 대해 인지하고 있지 않았다.
말했듯이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토니는 명석한 두뇌와 다양한 지식들과 재치를 사용했다. 그리하여 그는 그 어떤 심각한 일이라도 웃음으로 만들어 버리는 재능을 가지게 되었으나 동시에 믿음을 잃게 되었다. 그는 세상을 믿지 않았고 믿지 않았기에 그 모든 것을 웃음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불신은 이 세상과, 신, 나아가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에게까지 이어졌다. 이 말은 곧 토니는 로키가 자신에게 단 한 번 속삭였던 ‘토니, 사랑해.’ 를 믿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로키의 고백은 오래 전 토니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웅크린 방식에 따라 그저 하나의 ‘유머’가 되어 흘러갔을 뿐이다. 그러니 토니는 이 모든 상황을 자신이 뼈를 깎는 고통으로 사랑하는 로키가 자신을 떠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고 또한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다.




04


“토니.” 로키가 입을 열었다. “불 켜.” 로키가 무엇이라도 말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토니는 시스템에게 조명을 요구했다. 침실에 빛이 차오른다. 그러자 로키가 얼마나 엉망인 상태로 있었는지 더욱 선명해 졌다. 토니는 화가 났다. 슬펐다. 손 마디가 하얗게 질리도록 이불을 움켜쥔 로키의 오른손과 어둠 속에서도 짐작할 수 있었던 헝크러진 머리칼 그리고 입술. 그 얇은 입술이 피멍이 들도록 이로 잘근잘근 씹으며 비명을 대신하는 두려움과 고통이란 어떤 것일까? “토니.” 다시 한 번 더 그가 자신을 불렀다. “화 내지마 토니.” 자신을 주인으로 섬기는 충견에게 타이르는 듯한 말투였다. 로키는 눈 꼬리를 내리며 옅게 미소지었다. 보라빛으로 멍든 입술이 샐쭉하게 올라간다. 헝크러져 한 쪽으로 치우쳐 있던 머리칼이 자연스레 흘러 내렸다. 차갑고 생생한 광경에 토니는 로키가 소리지르며 울고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을 한다. 로키의 위태로움이 토니에겐 공포로 다가왔다. 쿵. 폐 안에 돌들이 차오르는 느낌이다. 나의 사랑, 나의 견고한 존재가 무너지는 공포는 그에게 죽음의 감각으로 다가와 다급하게 로키의 팔을 잡아 당긴다. 로키는 허물어져 그에게 안겼다. “울지 마.” 토니가 로키에게 속삭인 것인지 로키가 그 자신에게 속삭인 말인지 분별할 새 없이 로키가 그에게 팔을 두르며 한 없이 달콤하고 매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죽여줘.”




05


로키와 처음으로 섹스를 했을 때다. 뷰러로 집어 올려 보고픈 그의 속눈썹은 그의 시선처럼 늘 사선으로 떨어져 있다. 그 아래에 자리한 눈동자는 주변 사람들이 감탄하기를 ‘마치 에메랄드’같다고 했다. 토니는 그들의 칭송에 동의하지 않았다. 에메랄드라니! 심지어 로키 본인도 그러한 찬사에 비웃음을 날릴 것이다. 에메랄드는 분명 값진 보석임에 틀림없지만 로키의 눈동자는 그저 보석, 그것도 색상이 비슷한 계열인 보석으로 묘사되기엔 너무나 다채로워 한참이나 부족하다. 로키의 눈동자는 올망졸망한 키위 같다. 그의 눈동자는 결이 선명한 이파리 같다. 그의 눈동자는 쏟아져 내리는 별 빛을 온전히 받아낼 대지와도 같다. 어찌 보면 그것은 지구였다. 밤하늘을 품고 있는 대지의 향연 말이다. 토니는 그런 로키의 눈동자를 사랑했으나 로키가 자신의 눈동자와, 자신의 까칠한 수염과 자신의 부드러운 머리칼과 자신의 입술 자신의 눈썹 그 모든 것을 사랑하는지는 의문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의문도 이제는 상관이 없다. 어찌 되었든 로키는 그에게 몸을 내어줬고 그의 집으로 순순히 옮겨 들어왔으며 지금 그의 옆에 누워있었다.
그는 자신의 손가락을 관찰하며 숨을 고르게 내쉬고 있는 로키를 본다. 로키의 피부는 하얗고 예뻐서 보고 있노라면 그 입술에 붉은 립스틱을 칠해주고 싶다는 충동이 들곤 했다. 그러고 보니 로키는 신이었다. 이런, 내가 신을 겁탈했군. 그런 시시껄렁한 농담을 스스로에게 들려주다가 문득 붉은 립스틱을 그에게 발라 주고 싶다는 것이 얼마나 발칙한 상상이었는지를 깨달았다. 그는 막 신에게 붉은 립스틱을 칠하고 싶어 했던 것이다. 로키와의 첫 섹스 후 토니는 유독 실없는 농담들을 많이 떠올렸다. 그러다 결국 그는 참을 수 없는 궁금함에 로키를 불렀다. “로키.”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대신에 관찰하던 토니의 손가락 마디 마디를 자신의 검지로 쓰다듬었다. “궁금한 게 있나보지?” 로키는 말끝을 평소보다 길게 늘였다. 토니는 직감적으로 그의 기분이 매우 좋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자신감이 붙어 그가 본래 묻고 싶었던 것과 가장 가까운 질문을 한다. “로키, 넌 장난의 신이잖아. 맙소사, 신이라고! 그래서 말인데, 신은 정말로 인간을 사랑하나?” 로키는 잠시 그의 손마디들을 탐험하는 것을 멈추더니 토니의 시선을 찾았다. 토니는 로키의 반응에 웃기게도 스스로가 겁먹었음을 인지했다. 로키는 다시 시선을 토니의 손가락으로 돌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토니, 신은 인간을 사랑하지. 하지만 토니, 난 인간을 사랑하지 않아. 나를 사랑하기도 벅차니까.”




05.25


로키의 답에 토니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를 사랑하지는 않는단 소리군.’ 그리고 그 생각은 태양이 사방으로 만연하여 그 빛이 구석구석 미치지 않는 곳이 없던 어느 날, 테이블에 앉아 조용히 턱을 괴고 침묵하던 로키가 돌연 조금은 울 것 같은 눈동자로 크게 웃음을 터트리며 토니를 불러 ‘토니, 사랑해.’ 그렇게 말한 다음 순간에도, 그 다음 날에도, 지금에도 변함이 없다. 토니 스타크는 로키를 사랑하지만 신은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다. 토니의 세상은 그러했다.




05.5


로키는 자신을 죽여 달라 처음으로 청하던 밤이 토니를 얼마나 떨게 했는지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토니가 애써 듣지 못한 척 로키를 끌어안고 잠을 청하는 행동이 얼마나 애처로운 표현인지 알면서도 로키는 죽여 달라 말을 내뱉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자율적 의지이기도 했고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토니는 처음엔 무시했다. 두 번째에도, 세 번째에도 무시했다. 괜찮아졌나 싶어 긴장을 풀고 있으면 어김없이 ‘토니 올 때 책 좀 사다줘.’ ‘무슨 책?’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알았어.’ ‘잘 다녀와 토니, 그리고서 나를 좀 죽여줘.’ 죽음을 부탁해 왔다. 그럴 때 마다 토니는 소스라치게 놀랐고 화가 났다. 로키가 부탁하는 죽음은 너무나 처절해서 도저히 웃음거리로 만들어 하늘 위로 날려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가장 무겁고 고통스러운 세상이 그의 앞에 도래했을 때 이제껏 써 왔던 속임수는 소용이 없다. 토니는 로키의 부탁에 대응할 수없는 미성숙함에 화가 났다. 토니는 자신이 그를 사랑함을 알고 있는 로키가 그에게 피할 수 없는 과제를 내린다고 생각하여 화가 났다. 당신을 사랑하는 나의 마음을 이용해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나에게서 벗어나려 하다니! 토니는 그저 화가 났다.
히스칼리프는 캐서린의 무덤을 파헤칠 정도로 그녀를 사랑했다. 그것은 증오가 아니냐며 괴기한 이야기라 하지만 애초에 그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그만큼 격렬한, 인간이 차마 담을 수 없는 증오와 절망적인 슬픔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는 그녀를 사랑한 것이다. 사랑, 사랑, 사랑! 무덤을 파헤치는 비윤리적인 행위를 행하는 동안 그의 귓가에선 찬송가가 울렸으리라 장담한다. 추악한 행위조차 가장 찬란한 의식으로 만들어 버리는 사랑 이외로 세상에서 강력하고 무서운 것이 또 있을 수 있을까. 그것은 아무리 단단한 아머로 무장하는 아이언맨이라 한들 피해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토니는 몸서리치며 로키의 애원을 피해 다녔지만 자신의 사랑스러운 신이 울지도 못한 채로 자신에게 죽음을 구걸하는 몸짓과 눈짓 음성 그 모든 것이 하나의 씨앗이 되어 토니에게 자리한다. 그 씨앗은 토니 스타크의 분노를 볕으로 삼고 믿지 않아 죽어버린 로키의 고백을 토양삼아 자라나기 시작했다. ‘무엇이 나의 신을 죽일 수 있을까?’ ‘나의 사랑스러운 신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까?’ ‘나의 로키가 일말의 빛도 남기지 않고 사라지기 전에 죽음을 맞이해야 할 텐데.’ ‘날카로운 창도, 뜨거운 쇳물도, 거대한 폭발도 그를 죽일 순 없다. 로키에겐 무엇이 죽음이 될 수 있지?’ 그렇게 씨앗이 발아하여 싹을 틔우고 꽃이 피어나 순조롭게 열매가 맺혀갈 수록 로키는 시들어 갔다.
“토니! 나를 사랑하지 않아? 나를 사랑하잖아!” “로키.” “그렇다면 증명해봐, 날 죽여줘. 날 죽여서 너의 사랑을 증명해줘.” “로키, 그만해!” “토니 스타크, 날 사랑한다면 제발 날 죽여줘.” “로키... 넌 잔인해. 한 없이 잔인한 신이야.” 토니는 자신을 쥐어뜯을 기세로 안으며 외치는 로키를 밀쳐내며 말했다. 로키는 침묵하고 토니는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이러한 날들이 의미 없이 이어졌다.
토니가 긍정의 답을 하지 않은 채 방도부터 찾아 헤매는 동안 로키는 제대로 된 잠을 자지 못했다. 여러 가지 가설들이 세워지고 답에 가까이 갈수록 로키의 증세는 심해져 눈을 깜박이는 것에 조차 경기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자신의 시야에 어둠이 자리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로키는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이 인상을 쓰다 끝끝내 울지 못한다. 다만 토니의 바짓단을 붙잡고 애원했다. “타노스가 나를 죽일 거야, 토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방법으로. 나를 무너뜨리고 산산조각 내는 방법이란 방법은 모두 동원하여서 말이야! 토니, 제발 나를 죽여줘, 그가 나의 고통을 위해 무엇을 할 거 같으냔 말이야. 토니 스타크. 나의 토니 스타크! 나에게 죽음을 줘. 너에게 죽고 싶어 너에게, 너에게..” 그 뒤로 로키는 말을 잇지 못하고 비명만을 질렀다. 토니는 로키가 말라비틀어지는 꽃잎임을 절감한다. 경이로운 생명이었으나 지금은 ‘바삭거리는 애처로운 그 잎사귀를 봐’ 생기 있던 노랑은 진하게 눌러 붙었다. 로키에게 남은 것은 고통뿐이라는 것을, 타노스라는 존재에 로키는 이미 잠식당해 죽어가고 있다는걸 토니는 더 이상 외면할 수가 없다. 그는 몸을 숙여 바닥에 웅크린 채 괴성을 지르고 있는 로키의 등을 쓰다듬는다. 가슴의 푸른 불빛마저 집어삼킬 고통이 그의 깊은 곳에서 부터 올라와 토니를 강타한다. 그는 무릎 꿇으며 신 앞에 쭈그려 앉아 발작하듯 비명을 지르는 로키의 상체를 일으켜 안는다. 로키는 손을 활짝 펴 손가락 마디마디에 힘을 줘 토니의 등을 움켜쥐듯 안았다. “토니, 토니, 토니. 나의 토니.” 그는 로키의 목에 작게 입 맞추며 말한다. “로키, 기다려. 널 위해 내가 너를 죽여줄게.” 그제야 로키는 길게 숨을 내뱉는다. 그러나 일종의 구원 앞에서 안도하는 대신에 그는 더욱 처절하게 토니의 셔츠를 움켜쥐었다. ‘사랑해 사랑해 토니 스타크’ 알아듣기 힘든 발음으로 재빨리 로키는 속삭였다. 토니는 미간을 좁히며 눈을 감는다. 밝은 아침, 오직 햇살만이 찬란하다.




05.75


“이봐요. 재미있는 가설을 한 번 들어보실래요?” 큐브연구에서 가장 특이한 직책을 맡고 있는 오필리아가 한 번도 대화를 나눠 본 적 없는 토니를 붙잡았다. 그녀는 과학도가 아니었다. 그녀의 ‘일’은 큐브의 복잡한 수식과 원리에서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이야기로 이론을 풀어내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여자는 과학을 문학으로 만드는 업무를 맡고 있었다. 테서렉트의 사고방식과 인생관으로 원리를 풀이해 가는 것이다. 일종의 전기임 셈이다. 그는 어젯밤 눈꺼풀을 도려내겠다는 로키를 저지하느라 지쳐있었고 신을 죽일 방도에 대해 탐구하느라 머리가 많이 둔해진 상태라 별 탐탁치않은 여자의 제안을 단박에 거절하지 못했다. 여자는 감히 아이언맨의 뒤를 쫓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에너지는 에너지에 반응한다. 테서렉트는 아주 민감하고 또한 강렬한 여자다. 그러면 이 여자는 무엇에 반응할까? 에너지? 하지만 모든 에너지에는 아니다. 바로 자신과 닮은 에너지에게 반응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매주 화요일마다 반응의 폭이 커지는데 그것의 공통점이 무엇일 것 같아요? 토니는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 옅은 금발의 여자를 위협한다. “아가씨, 햄릿의 오필리아와 같은 결말을 맞이하고 싶지 않으면 이제 그만 방해했으면 하는데.” 좀처럼 멍청해 보이던 여자는 어느새인가 날을 세운 눈동자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다. 여자는 물러서지 않는 대신 웃었다. “맞아요. 바로 당신이에요.” 토니, 당신이 이 연구소를 지나가는 시간에 테서렉트가 반응한다고요. 왜일까? 생각했죠. 생각해 보니 당신에겐 루머가 있잖아요. 당신이 로키와 함께 지낸다는 그런 루머 말이에요. 만약 루머가 사실이라면 테서렉트는 당신이 아니라 당신에게 묻어 있는 ‘그’의 에너지에 반응하는 거에요. 토니는 계시가 있다면 지금 이 여자가 그 계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계속해봐.” 그렇다면 에너지의 반응은 어떨까요? 반응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에너지의 방출? 에너지의 흡수? “그건 상대를 적으로 인식하느냐 동류로 인식하느냐에 따라 다르죠. 적이라면 그 앞에서 에너지를 방출하고 자신과 같다면 그의 에너지를 흡수하겠죠. 궁금한 게 있는데, 당신 생각엔 어떤 거 같아요?” 뭐가 어떻다는 거지? “로키는 테서렉트의 동류일까요, 적일까요?”
이 여자는 이런 이야기를 왜 자신에게 하는 것일까? 토니는 위화감에 오른팔로 그녀를 벽으로 밀어붙였다. 왜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지? 그는 가련한 여자를 내려다보며 으르렁거린다. 오필리아는 약해보이는 연구원답지 않게 여유를 잃지 않았다. “전 이야기꾼이에요. 과학에 있어서 천재적인 역량을 발휘하진 못하죠. 그리고 전 오만해요. 저의 이야기가 진실인지 알고 싶어요. 그래서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그 뿐이니 이제 그만 놔 주시죠.” 토니는 여자를 내리누르던 팔을 거두며 묻는다. “무슨 도움이 필요해.”




06


그 ‘약속’ 이후로 로키는 무서울 정도로 차분해졌다. 거대한 폭발이 있기 바로 전 모든 에너지를 내부로 끌어당겨 침묵하는 것 같이 고요하다. 로키는 토니가 언제 가지고 나타날지 모르는 ‘죽음’을 위해 늘 깔끔하고 단정한 모습을 유지했다. 평소 좋아하지 않던 하얀 색상의 옷도 즐겨 입기 시작했는데, 죽음을 위한 일종의 의식 같았다. 햇살이 찬란하고 시끌벅적한 여름에, 외출을 꺼리던 일요일 아침. 토니는 조용히 거리로 나섰다. 그런 토니를 보며 로키는 자신의 죽음이 드디어 도래했음을 알았다. 드디어 오늘이다. 로키는 홀로 남은 공간을 돌아보더니 얼굴을 감싸 쥐며 주저앉는다.
토니는 오필리아에게 조그마한 크리스탈 병을 건네받았다. 그 안에는 여자의 눈동자처럼 푸르른 액체가 찰랑이고 있다. 별이 내리는 바다처럼 매혹적인 색체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가슴 한편이 싸하게 아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아크 원자로는 정직하여 차가워지지 않음에도 자꾸 어딘가 벌어진 틈새로 차가운 공기가 새어 올라온다. 차갑다. 가슴을 얼린다. 간지럽게 결정이 되어 매달리는 감각에 토니는 그 누구도 자신을 보지 않는 순간을 틈 타 울음 찬 표정을 지었다.
토니는 주머니에 작은 병을 집어넣은 채 거대한 유리벽이 자리한 거실로 향한다. 로키는 죽음이 약속된 이후로 거대한 유리벽으로 쏟아 들어오는 햇볕을 맞으며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좋아했다. 아마 지금도 그곳에 자리하고 있겠지. 토니는 작게 자신의 가슴을 톡톡 친다. 괜찮아. 이 모든 것은 괜찮아. 그는 주머니에서 액체화 된 테서렉트의 일부분이 담긴 병을 꺼내 쥔다. “로키.” 그가 돌아본다. “좋은 아침이야, 토니 스타크.” 신은 한여름의 날씨가 춥기라도 한 듯이 새하얀 천을 덮고 있다. 그의 검은 머리칼이 대조되어 더욱 짙다. 로키는 계속해서 조금씩 떨리는 손을 들어 올리며 토니를 반겼다. 토니는 위태롭고 또한 아름다운 모습에 그의 손을 마주 잡으며 쥐고 있는 병을 내보였다. 로키는 발광하는 푸른 액체가 담긴 크리스탈병을 보자 희미하게 웃었다. 눈을 휘고 지친 입 꼬리를 올리며 말이다. 그의 뒤로는 뜨거운 태양이 선사하는 새하얀 섬광만이 유일하다. 유리는 그 빛 하나 남기지 않고 모두 긁어모아 그들에게 바치는 듯하다. 로키는 말없이 크리스탈 병을 집어 들었고 토니는 말없이 그 병을 넘겨주었다. 로키는 조금 전의 자신이 그러했던 것처럼 병 속의 푸른빛을 응시 해 본다. “토니 스타크, 마치 너 같아.” “무엇이?” “너의 가슴에서 새어나오는 빛같이 찬란하고 푸르러.” 로키는 병의 뚜껑을 빼려고 여러 번 시도하나 번번이 실패했다. 손가락의 떨림이 너무나 심했기 때문이다. 대신 토니가 그를 위해 마개를 뽑았다. 액체에선 아무런 향도 나지 않는다. 로키는 양 손으로 그 작은 병을 감싸 쥐더니 말한다. “토니, 내 손을 좀 잡아줘.” 숨 막히게 자신들을 둘러싸는 이 햇볕. 여름의 향기가 생생하다. 꿈일 것만 같은 순간인데 모든 감각들이 현실에 강하게 반응하여 이 살아있음이 생경하다. 마치 그 이전까지의 자신은 죽어 있었던 것 같았다. 토니는 천천히 로키의 창백하게 떨리는 손을 양 손으로 감싸 쥔다. “나를 봐.” 로키는 으레 하던 위협마저도 잃었는지 자신을 보라는 명령이 꽤나 부드럽게 흘러 나왔다. 토니는 로키의 눈동자를 응시한다. “로키..” “쉿.” 신이라고 불리는 사내, 로키의 눈동자에서 별이 빛난다. 초록 안개 같은 성운이 자리한 눈동자. 토니는 일순간 끝없이 벅차오르는 가슴과 자신을 한없이 사랑하는 햇살을 느꼈다. 아, 나의 신! 로키는 충혈된 눈가로 차오르는 토니의 눈물을 보며 낮고 분명하게 자신의 언어를 전달한다. “토니, 신은 인간을 사랑하지만 나는 인간을 사랑하지 않아. 그건 내가 나를 사랑하기에도 벅차기 때문이지. 그러나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 발 딛을 대지가 있었기에 비로소 가능한 거였어. 토니 스타크, 너의 사랑을 나는 사랑해. 넌 나의 대지야.” 로키는 눈을 감으며 푸른 액체를 입 안으로 머금고 눈을 뜨며, 삼켰다. 로키는 수채화처럼 옅은 웃음을 띠며 토니를 바라본다. 나의 신, 나의 로키, 나를 사랑하는 나만의 신! 토니는 세상의 사랑과 신의 사랑과 아니, 그저 로키의 사랑에 승복해 그가 진실로 떠나가 버리기 전 그의 이마에 작게 키스한다. “당신은 나의 우주야 로키.” 불현듯 감싸 쥐었던 로키의 손이 무겁다. 토니는 조심히 로키의 손을 내려놓는다. 로키가 눈동자로 품었던 우주가, 나의 사랑이 품었던 생명이, 나를 사랑하던 신이 내게 주던 그 기쁨이 이제는 없다.
로키가 자신에게 사랑한다 말했던 빛이 충만한 여름이다. 그러나 어느새 시끄럽던 도시의 소리는 온데간데없는 눈이 내리는 하늘이다. 토니는 신 앞에 무릎 꿇고 그의 발등에 입 맞춘다. 아! 나만의 신, 나의 순수, 나의 은총. 내가 너를 죽였다. 이제 이 세상은 나를 벌하겠지. 사랑스러운 신을 죽인 이 나를 모두가, 세상이, 우주가 벌하겠지.






0


“앤소니 에드워드 토니 스타크, 무죄.







07


억만장자 토니 스타크, 영웅이라는 아이언맨 그 모든 수식어를 제외하고서도 그저 한 인간. 한 인간이 신을 죽였다는 이 사건을 굉장히 흥미롭게 생각하던 여판사는 토니 스타크를 제지하려 애쓰는 경찰관들에게 멈추라는 신호를 했다. 스타크는 붙잡힌 양팔을 거칠게 휘두르며 소리쳤다. “나는 한 남자를 죽였어! 왜 처벌이 없단 말입니까!” “토니 스타크, 당신은 한 남자를 죽인 게 아니라 신을 죽인 겁니다. 안타깝게도 법에 신을 죽인 인간에 대한 이야기는 없네요.” “법은 타는 쓰레기만도 못한 폐물이에요. 동기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난 로키를 죽일 동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신을 죽이려는 동기를 가진 이들은 많아요. 스타크씨, 벌을 받고 싶나요?” 그는 자신이 억만장자 토니 스타크라는 것과 지구를 구한다며 바쁘게 돌아다니던 ‘영웅’ 아이언맨이라는 위치를 잊은 채 겁 없이 무릎을 꿇는다. 그는 법정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판사를 올려다본다. 여자의 질긴 흑발은 로키의 것과 닮았다. 기묘하게도 번뜩이는 녹안 또한 로키의 것과 같아, 토니는 일어나는 현실의 정교함에 짧게 감탄했다. 그는 판사, 나아가 자신의 죄를 벌할 권한을 가진 그녀에게 절실하게 말한다. “네 벌을 받아야만 합니다.” 여자는 ‘이런, 당신이 그렇게까지 신실한 신자인줄을 몰랐네요.’ 그렇게 중얼거렸다. 비아냥에도 토니 스타크는 판사를 올려다보는 시선을 굽히지 않았다. 판사는 그런 스타크를 조금은 경멸하듯이 내려 보다 짧게 시선을 위로 한다. 직책에 비해 젊어 보이는 판사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짧은 침묵의 나열에 토니는 이 순간만큼 경이로운 순간은 자신이 로키의 발등에 입 맞추던 순간 밖에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몇 초간의 정적 후 여자는 눈을 치켜뜨며 토니를 또렷이 응시한다. “제 생각엔 아마도 당신에게 벌은 끝까지 살아남는 것일 것 같군요. 그 어떠한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상생활을 해내면서 살아가는 것 말이죠. 그럼 선고라도 할까요?” 여자는 낮게 웃으며 ‘땅땅땅’ 망치로 법정을 울렸다. “토니 스타크. 숨을 쉬고, 살아있으세요. 당신이 살아있을 수 있는 순간 까지 말이에요. 아마 이것이 당신에겐 가장 처절한 벌이자 은총이 될 것입니다.” 토니는 무릎 꿇고 그 아래에서 여자의 낱말들을 온 몸으로 받아내었다. 토니는 겸허히 그 생을 선고 받는다. 그리고 어린아이처럼 정말로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08


토니라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신이라는 존재를 믿지 않게 ‘신’에 의해 설계되었다. 토니 스타크가 신을 믿는 순간 신의 존재가 부정된다. 토니는 전지전능하지도 지선하지도 않은 자신의 로키를 사랑했을 뿐이었다. 그가 신이라는 것과 신을 믿는 것은 그 후의 일이었다. 엄밀히 말해 오만하고 세상 모든 것을 웃음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었던 토니는 신을 믿지 않았고 로키 또한 믿지 못했다. 다만 로키의 죽음이 토니에게 사랑을 남겼을 뿐이다. 토니는 그 신성한 죽음 앞에서 영광과 전율과 잔인한 경이를 온 몸으로 느꼈기에 로키의 사랑을 믿지 않을 수 없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고 사랑받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에 그는 숨죽이며 로키의 발등에 입 맞췄다. 또한 그렇기에 토니는 자신의 운명을 여판사에게 맡기며 무릎 꿇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신의 사랑을 믿고 신은 없다.




09


그는 로키를 사랑하고 로키의 사랑을 받는다.




10


그러나 로키는 없다. 다만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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